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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생활/해외취업] 요즘 나는 슬럼프

by 조알라 2017. 4. 15.


말 그대로...슬럼프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좋은 이름의 회사지만, 하는 일은 턱없이 초라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회의감이 들긴 했지만, 아직 초반이기도 하고

맘고생했던 나에게 이정도의 편안한 생활은 줘도 된다는 면죄부 같은 마음이 들기도 했고.

새로운 해외생활에 대한 판타지 덕분에 이것저것 도전하고 일상을 채워나갈 에너지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 에너지의 스위치가 꺼져버렸다.

무엇이 나의 그 스위치를 꺼버렸는지,

차근차근 정리해보자면......


1. 일

가장 큰 부분은 역시 일.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사실상 개개인의 역량 차이가 크게 드러나지 않는 일이다.

회사의 메뉴얼을 얼마나 정확히 준수하느냐로 그 우수함을 측정한다.

나의 의사 결정권이 주어지지 않는, 단순 업무를 한다는 것이 나를 갑갑하게 한다.

또 한 가지는, 업무 중 일부분이 도무지 경멸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다루는 일.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정말 어른이 되면 이런 일만은 하지 말아야지" 했던 일을 

지금 하고 있는 내 자신에 자괴감이 안 들수가 없다.

그 전의 일은, 적어도 직무 하나만은 엄청난 경쟁을 일으키는 인기 직무였고

나에게 빈 도화지를 주고 채워나가라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일 자체는 내게 꽤 잘 맞는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일 외적인 부분이 나를 짓누르고 또 짓눌렀지만.)

같은 해외 취업 한국인이라도, 이런 일을 하는 한국인과 주요 직무를 맡은 한국인과는

서로 다른 리그에 속한 느낌이라, 가끔 그런 사례들을 보면 또 자격지심이 들고 만다.


2.1 사람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천박한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 곳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진실한 교류를 하기 어렵다. 


어찌저찌 사람을 알게 되어도 피상적인 관계에 그치게 되는 것은 둘째치고,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시사 용어를 몰라서 그 시사용어를 설명하다가 포기하고 얕은 주제로 넘어간다거나,

도무지 들어줄 수 없는 논리로 남을 폄하하고 조롱한다거나,

모든 대화가 이성에 대한 또는 이성 교제의 종용에 대한 방향으로 흐른다거나 하니

솔직히 내 소중한 시간을 내서 사람들을 만나는게 아까워지고, 지레 짐작 및 포기하게 된다.

최근에는 심지어 중범죄에 가깝게 연루된 사람까지 만나봤는데, 

정말 이 일까지 있고 나니 내 사람 풀이 왜 이렇게 됐나 쓴웃음이 나온다.


나는 본래 사람과 깊게 친해지지 못하는 편이긴 해도, 

사람과 사람이 주는 영향, 간접 경험과 식견으로 인한 삶의 확장을 중요시하는데,

이 곳에서는 긍정적이기보단 부정적인 영향이 더 많이 느껴져, 혼자를 택하게 되고

결국 그러다보니 행복지수는 떨어지고....그렇다 ㅠ_ㅠ


그리고 나는 2의 문제가 1의 문제에 종속되었다고 생각한다.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1의 일과 관계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실망스러운 부분도 많다고 느낀다.

속물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2.2 ......사람

그리고...... 사람을 만나기도 어렵다.

사실 2.2면 2.1의 아쉬움은 다 상쇄가 가능한데, 2.2는 2.1보다 더 개선될 가능성이 적다.

점점 큰 이유가 되고 있다.


3. 집 주 (住)

이 곳에선 외국인 사회 초년생이 룸렌트 이상의 옵션을 선택하기 녹록치 않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셋방살이를 울며겨자먹기로 하게 되는데,

이게 이렇게 나를 스트레스 받게 할지 몰랐다.


부엌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것, 드나드는 시간 및 빨래 날짜를 늘 신경써야 하는 것...

원치 않는 소음과 악취 등.


내가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매우 싫어해서인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의 집에 같이 산다는 것이 나를 무의식적으로 누르고 있는 느낌.

근데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고, "아 혼자 살고 싶다" -> "돈을 더 벌자" -> "1번으로는 그거 안돼"->".........." 

의 결론에 이르는 것이 나를 너무나 무력하게 한다.


4. 가족, 그리고 고국

가족이 그립다. 시간은 한정적인데, 이래도 되나 싶다. 이건 뭐 별다른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듯.


고국은....글쎄, 나는 사실 내 나라에서 일을 하는 것 이외에는 그렇게 불만이 크지 않았다.

분명 부끄러운 민낯이 많은 나라지만, 적어도 내가 꾸리는 내 삶 안에서는 합리적으로 살 수 있었고

우리나라만이 갖고 있는 매력에도 나는 늘 매료되어 있고, 지치지 않고 즐거워하고 감동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괴롭게 하는 일부의 문화가 내 인생 전반을 썩어가게 해서 탈출하게 됐던 거였다.

이제 그 부분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니, 어찌 보면 사소하고 무형인

내 나라에 대한 설명 못할 그리움, 아니 그리움이라기 보단 선호의 마음이 막 치고 올라온다.

사람이 참 이렇게 알량하고 약았다. 


휴....쓰다보니...

물론 "아니 그럼 네 나라로 가든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글쎄 적지 않은 나이이다보니,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지금의 나는 적어도 "괴롭진" 않다.

다만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다.

그 부족함이 커지고 커지고 커지다보니, 이렇게 주말밤에도 심란해져 버린다.

그런데 그 "부족함" 때문에 "괴로울"지 모르는 삶을 선택하기엔 나는 겁쟁이이다. 


이 슬럼프를 어떻게 지혜롭게 헤쳐나가야 할지.......

알고 싶고, 기대고 싶다.

결국 답은 내 안에 있는데도.